칠월칠석을 앞두고, 옥잠화가 피었습니다요즘 수목원에는 옥잠화가 하나둘 피기 시작합니다. 한낮에는 수줍게 꽃봉오리를 다물고 있다가 해가 기울고 저녁이 찾아오면 하얀 꽃잎을 활짝 열고 은은한 향기를 내어놓습니다. 옥잠화(玉簪花)는 이름 그대로 ‘옥으로 만든 비녀를 닮은 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꽃이 피기 전 길고 희끗한 꽃봉오리가 옛 여인들이 머리에 꽂던 옥비녀를 닮았습니다.
마침 곧 칠월칠석입니다. 견우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직녀가 곱게 머리를 빗고 옥비녀를 꽂으며 단장을 하는 걸까요? 낮의 뜨거운 햇볕이 조금씩 물러가고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으면 옥잠화도 기다렸다는 듯 곱게 단장하고 꽃을 피웁니다.
칠월칠석을 기다리며 피어나는 옥잠화. 요즘 수목원에 오신다면 밝은 낮보다는 해가 조금 기울 무렵, 옥잠화 곁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하얗게 피어난 꽃과 은은한 향기 속에서 칠석날을 기다리며 단장하는 직녀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옥잠화에 얽힌 이야기 하나!
선녀가 남기고 간 증표 옛날 금강산 근방 한 곳에 장씨 성을 가진 젊은 총각이 살고 있었다. 그는 부지런한 농사꾼이었다. 낮이면 열심히 농사일을 하다가도 밤이 되면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혼자 ‘삘리리 질질 삘리리 질질’ 피리를 부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 몇 년 세월을 밤에 밤마다 피리를 동무하여 재간을 익히다보니 이제는 그 근방에서 한다하는 피리명수가 되었다. 어느 여름날, 쟁반 같은 둥근 달 아래 그는 전과 같이 구성지게 피리를 불고 있었다. 그 때 문득 공중에서 보라색 채운이 짝 갈라지면서 영롱한 빛이 감돌더니 하늘나라 선녀가 훨훨 날아내려 오는 것이었다. 드디어 꽃 같은 그 선녀는 장씨 총각 앞에 살랑 내려와 넙죽 엎드려 절을 하였다. 장씨 총각은 너무도 황공하여 미처 몸둘 바를 몰라하였다. “아, 아니 어디서 오신 공주신데 이렇게.” “총각님,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이 소녀는 하늘나라 월궁에서 온 상아 아씨의 사자(使者)에불과하옵니다.” “뭐, 월궁 상아 아씨의 사자라구요?” “예, 그래요. 다름 아닌 총각님의 구성진 피리소리를 신변에서 듣고 싶다는 월궁공주의 소원을 전달하러 내려온 심부름꾼이지요.” “아, 그렇습니까?” “그러니 힘드시더라도 저와 함께 한번 월궁으로 행차하셔야만 하겠나이다.” 그 말에 장씨 총각은 굳이 사양하였다. “공연히 과찬을 다 하십니다. 아직도 저의 재주는 너무나도 서툰데요.” 허나 장씨 총각의 실속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실은 월궁 공주의 소원을 전달하려고 하강해 내려왔다는 그 선녀의 황홀한 미색에 홀딱 반해 그와 더불어 이 밤을 한껏 즐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또 말했다. “선녀 아씨! 어디 그럼 저의 피리소리를 한 번 더 들어보세요. 정말 이런 수준으로 월궁으로 갈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그 말에 월궁 선녀도 장씨 총각이 과히 싫지 않은지라 그만 못 이기는 척하고 허락했다. “좋아요, 그럼 어디 한 곡 더 불어 보시지요.” 장씨 총각은 꽃 같은 월궁 미녀가 곁에 앉아 있는지라 흥이 나서 머리를 삿대질로 내저으며 피리를 불어젖혔다. 한 곡조 끝나자 선녀는 또 한 곡을 청하였다. 장씨 총각은 흥이 도도하여 또 한 곡 멋지게 불어젖혔다. 어느덧 장씨 총각은 평시에 익혀둔 명곡을 모조리 다 털어 놓았다. 이러는 어느새 북두칠성도 앵돌아 앉고 차차 샛별이 뜨더니 동녘이 희붐히 밝아 왔다. 그제야 제정신이든 월궁선녀는 벌떡 일어나며 하늘로 올라갈 차비를 하였다. “아이 참,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모른다더니…….” “아니, 조금만 더 앉았다 가시지요.” 장씨 총각은 그와 헤어질 일이 너무도 아쉬워 섬섬옥수 두 손을 꼭 잡아 쥐며 애원하듯 말했다. “저도 맘과 같아서는 더 주저하지 않았다 가고 싶지만 사정이 그럴 수가 없어요.” 선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살짝 뿌리치고 벌떡 일어났다. 더 말릴 수가 없었다. 장씨 총각은 월궁 선녀와 작별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 이렇게 말했다. “선녀 아씨! 정 그렇다면 오늘 이 밤의 아름다운 추억을 길이길이 되새길 만한 징표라도 하나 주어야 할 게 아닙니까?” 그러자 선녀는 자기의 머리에 꽂고 있던 옥비녀를 살짝 뽑아 그에게 건네 주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나는 아마 다시는 더 당신 곁으로 올 것 같지 않으니 제가 생각나시거든 이 옥비녀나 두고 보세요.” 그러더니 그는 하늘로 훨훨 날아 올라갔다. 장씨 총각은 옥비녀를 받아든 채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았다. 그러는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그 옥비녀를 땅에 뚝 떨구고 말았다. 선녀가 까마득히 사라진 그제서야 장씨 총각은 땅에 떨어진 옥비녀를 주우려고 허리를 굽혔다. 그러나 옥비녀는 온데간데없고 옥비녀가 떨어졌던 그 자리에 한 떨기 아름다운 꽃에 활짝 피어 있었다. “아, 이는 필시 하늘 달나라 선녀 아씨의 마음이 한 송이 꽃으로 핀 것이로구나.” 총각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이 꽃을 ‘옥잠화’, 즉 ‘옥비녀꽃’이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이 꽃은 온 누리에 널리 번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