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나무는 배롱나무, 그중에서도 흰배롱나무였습니다.
배롱나무 하면 흔히 진한 분홍빛 꽃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수목원 한편에는 흰배롱나무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어요. 자잘한 흰 꽃들이 가지 끝에 한데 모여 피어난 모습이 마치 한여름 나무 위에 흰 구름이 내려앉은 듯 합니다.
배롱나무는 백일홍나무라고도 부릅니다. 한 송이의 꽃이 백일 동안 피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꽃이 피고 지기를 거듭하며 오랫동안 꽃을 볼 수 있어 붙은 이름입니다.
배롱나무에는 백일 동안 이어지는 꽃과 관련된 전설도 전해집니다.
"옛날 어느 바닷가 마을에 사람을 괴롭히는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마을에서는 이무기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쳤는데, 어느 날 한 영웅이 나타나 처녀 대신 이무기와 싸우러 떠났다. 그는 살아 돌아오면 흰 깃발을, 실패하면 붉은 깃발을 달겠다고 약속했다.
백일 뒤, 멀리서 영웅의 배가 나타났다. 그런데 배에는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처녀는 영웅이 죽었다고 생각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영웅은 살아 있었다. 이무기와 싸우면서 튄 피가 흰 깃발을 붉게 물들였던 것이다.
뒤늦게 돌아온 영웅이 찾은 것은 자신을 기다리던 처녀의 무덤뿐이었다. 그리고 그 무덤에서는 붉은 꽃이 피어났다고 한다. 백일 동안 영웅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처녀의 마음처럼 오랫동안 피어 있는 꽃. 그래서 사람들은 이 꽃을 백일홍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알고 나니 흰배롱나무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전설 속에서는 영웅의 생환을 알리는 것이 본래 흰 깃발이었으나 이무기의 피로 깃발이 붉게 물들면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그래서일까. 붉은 배롱꽃 사이에서 만나는 흰배롱꽃은 마치 피로 물들기 전의 흰 깃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뜨거운 한여름, 백일 가까운 시간을 두고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배롱나무.
그중에서도 흰배롱나무는 붉은 꽃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여름을 밝혀줍니다. 초록 잎 위로 소복하게 피어난 흰 꽃을 보고 있으면, 나무 위에 잠시 머물다 가는 여름 구름을 보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