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충북지역 사회단체 토론회 관련 글
  글 쓴 이 :   문재현 회원정보 및 메시지 보내기  게 시 일:    2008년 03월 03일 조회 : 53 건 추천 : 0 건
 
이 글은 2000년 12월 10일 충북지역사회연구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후 느낀 문제를 정리해서 쓴 것입니다.


                           12월 10일 토론회에 대한 몇 가지 문제 제기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 문재현

1.문제를 제기하는 까닭

지난 12월 10일 충북지역사회연구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은 필자가 글로 문제 제기하는 것에 대해 의아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도 토론회에 참석했고 토론회에서 충분히 말할 수 있는데 왜 이런 방식을 택하는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문제를 제기할 시간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토론회에 대해 안 것은 12월 10일 당일이었고, 그것도 그 날 사무실에 늦게 출근했기 때문에 열 두 시가 넘어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토론회에 참석한 때가 오후 두 시였고, 미리 정해진 약속이 있어 다섯 시에는 나와야 했기 때문에 입장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다음으로, 말로 문제 제기한 것에 대해서 잘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참석한 분들은 기억나시겠지만 학생운동과 관련하여 발제 한 분에게 개념상의 문제를 제기했지만 얼토당토 않는 논리로 자기 입장만을 고집할 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적으로 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토론회는 1985년에서 1999년까지 지역사회의 운동경험을 정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기간동안의 주요 활동이나 단체에 대해서 충실하고도 객관적인 조명이 필요합니다. 필자가 소장으로 있던 충북사회발전연구소는 이 기간동안, 특히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지역사회운동을 내용적으로 주도했다고 봅니다. 신채호 동상 건립운동, 정춘수 동상 철거, 문장대 용화 온천 반대 투쟁, 무심천 하상 구조물 설치 반대 운동 등 지역 운동의 지평을 확대하고, 시민 사회 단체의 지역적 위상을 높인 투쟁들이 충북사회 발전 연구소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는데 대해서 아무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후 충북사회발전연구소를 해체하고 마을수준교육과정연구소, 생태교육 연구소 ‘터’ 등으로 분화했는데, 우리 마을수준교육과정연구소와 터의 활동은 기존 운동단체나 시민단체의 활동과는 분명히 다른 의미와 내용을 갖는 영역이라고 봅니다. 기존 사회 운동이 동원적 측면이 있고, 시민단체들이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한다면 우리의 실천은 민중을 중심에 놓고, 지식생산부터 사회적 실천까지 민중이 스스로 참여하고 조직하는 새로운 형태의 운동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실천에 대해서는 준비과정부터 토론회 진행에 이르기까지 어떤 배려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지역사회운동의 역사를 바르게 조명하고, 시민 사회운동가들과 지역사회학자들의 편향적 사고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이렇게 문제를 제기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2.토론회 준비과정과 진행에 대하여

이러한 토론회는 그 동안 사회운동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을 정리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함께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동안 지역사회 운동 주제들 간에 불신이 쌓여 왔고, 활동하는 공간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이러한 토론회를 준비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지역사회학자들이 나서서 토론회를 조직한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토론회를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한계를 느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자 합니다.
먼저, 충북지역사회연구회에서 주관한 토론회라면 사회학자들의 독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구체적인 상황을 구체적으로 복원하지 않고 일부 활동가들의 경험과 판단을 주관적으로 정리한 것은 사회운동의 경험을 정리하여 역사 속에 기록하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천년을 맞이한다는 토론회의 목적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본 사료 정리부터 관계된 사람들의 중요한 사건에 대한 구술 등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훨씬 바람직한 토론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토론의 방식에 대한 것입니다. 이번 토론은 발제가 모두 진행된 이후 토론회가 진행되었는데, 이런 방식은 구체적인 사실 파악과 총체적인 접근을 하기 곤란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발제가 있은 다음에 입장이 다른 측이나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질문과 반대 토론을 하는 기회를 주었으면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와 진술을 통해 훨씬 더 입체적인 토론회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제의 선정에도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부문별 정리 뿐 아니라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정리가 꼭 필요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기를 들어 6월 항쟁의 경우 전선운동이라는 측면에서 일부 발제가 있었는데,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복원한다면 발제와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발제에서는 당시 충북민주운동협의회가 계획, 조직한 것처럼 되어있지만 충북지역 6월 항쟁의 기폭제가 충북대 학생들의 자생적인 투쟁이었고, 지역사회단체와 중심적 활동가들은 그 자생성을 따라가기에도 바빴던 것이 실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구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당시 지역 사회 운동의 조직역량과 한계, 그리고 그 이후 전개 과정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데 이러한 내용이 빠져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발제자 및 토론자 선정에도 한계가 있었다고 봅니다. 다수의 발제자들은 누가 봐도 그 사람이 해야 된다고 생각할만한 사람들이지만 학생운동을 발제한 사람의 경우, 학생운동의 내적 발전을 파악할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고, 학교를 졸업한 이후 사회운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제자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 토론자의 경우도 지역운동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려운 위치에 있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토론이 아니라 원론적인 입장을 발표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3.각 부문별 발제에 대한 문제 제기

여러 부문의 발제가 있었는데 그 중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에 대해서는 우리 연구소와 관련된 문제가 없고, 문화 부문의 경우, 그 내용이 문화 운동, 문화인의 개념보다는 문예 운동, 문예인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는가 하는 것 외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학생 운동, 시민 운동, 환경 운동의 경우는 우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1)‘충북지역 학생 운동사 발제’에 대해
학생운동사 발제에 대해서는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하려고 합니다.
첫째, 학생운동사 발제자는 정파의 움직임을 추적하기 보다 운동주체들의 대중적 성장과 대중운동의 발전에 초점을 맞춰 진술하겠다고 하였지만 그러한 측면들 즉, 비합법 동아리에서 합법 동아리로 발전하는 과정이나 학생회가 대중과 연계되는 과정 등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없기 때문에 추상적인 정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보기를 들면, 전국적으로 진행된 학생회 건설투쟁의 경우 그것의 대중적 토대는 80년대 초반의 입영거부투쟁과 농활이었습니다. 수도권에 있는 중심적 대학의 경우 이러한 투쟁이 과 단위로 진행되면서 많은 활동가들이 성장하고, 학생회 건설 투쟁을 통해서 운동의 대중적 기반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충북의 경우, 이러한 투쟁이 대중적으로 전개되지도 못했고, 몇 사람의 노력을 제외하고는 학생 운동 전체가 86, 87년까지도 비합법 동아리 상태를 채 벗어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과 학생회, 단대 학생회를 기초로 한 튼튼한 학생회를 건설하기는커녕 총학생회를 장악하기도 벅찼고, 이는 6월 항쟁 시기에 학생회가 항쟁을 주도하지 못하는 대중적 기반의 취약성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이후 학생들의 자생적인 모임 즉, 노래동아리나 풍물패, 시사토론회 등의 작은 소모임이 만들어지고 이들을 기반으로 학생회 활동이 보다 활성화 될 때는 있었지만 이러한 다양한 소모임들에 대한 방향 제시 및 활동을 집약하는 실천이 조직되지 못함으로 해서 학생운동은 대중적 기반을 완전히 상실하는 현재의 모습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전대협이나 한총련을 중심으로 하는 서술로는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둘째, 개념 사용의 자의성 문제입니다. 발제자는 정파를 거론하면서(p73 19행) ‘주사파, 비주사파, ND, PD, SL(Secret Line)이 난립하면서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분화의 과정을 밟는다. 제 각가의 정파들이 대중의 이익에 복부하기 보다는 중요한 시기마다 대중을 혼란에 빠뜨리며 대중의 자주적 진출을 가로막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먼저 개념의 문제를 보면 SL이라는 정파를 거론했는데 SL이라고 스스로를 표방하는 정파도 없었고, 또 SL이라는 말 자체가 정파의 이름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개념 사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 했는데 이에 대해 발제자는 당시의 범칭(?)이었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범칭이니 보통 그렇게 사용하고 있었다는 말은 당사자들이 그러한 명칭 사용을 몰랐다는 측면에서 일부 정파가 자기들끼리 비밀리에 사용한 개념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통 그렇게 사용했다고 일반화할 수 있겠습니까? 또, 발제자는 운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당시의 모든 정파가 대중을 혼란을 빠뜨렸다고 했는데 그러한 말을 하려면 당시의 정파들의 주장과 그 당시의 주장이 지금에 와서 옳은지 그른지 까지도 검증해야 된다고 봅니다. 발제자가 SL이라고 한 그룹은 다른 정파하고는 분명히 달랐다고 봅니다. 대중의 자주적 진출과 과학기술혁명이라는 새로운 조건 속에서 운동가들은 전문적인 지식과 대중적 소모임 건설 및 운영을 통해서 비대중적인 사업 관행 및 관념적 사고들을 극복하자는 방향에서 실천을 조직하였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각 부문운동에서 그 당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여전히 실천활동을 심화시키고 있는데 어떻게 운동도 하지 않는 사람이 그렇게 싸잡아서 비판을 할 수 있는 것입니까?

2)‘충북지역 환경운동사 발제’에 대해

  환경운동과 관련해서는 문장대, 용화 온천 개발 저지 충북도민 대책위(온천대책위) 활동과 관련된 부분만 언급하겠습니다.
우선, 이 싸움에 대한 정리에서 발제자는 ‘문장대 용화 온천 개발 저지의 경우 기존에는 법적 투쟁에 머물러 있었으나 용화 온천 현장 점거 농성을 강행하면서 운동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다.(9쪽 23행)’ 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미 농성에 들어간 것이 1996년 8월인데 그 이전인 1996년 6월에 법적 투쟁을 벗어나서 투쟁을 전국화, 시민화 하는 방안에 대한 토론회가 있었고, 필자가 그 방안을 발표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지역 유지들이 중심이었던 법적 투쟁에 대해서 환경단체들은 참여를 꺼리고 있었고, 필자의 적극적 설득으로 시민단체들 뿐만 아니라 사회운동단체도 참여시키는 방향으로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문장대 용화 온천 점거 농성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점거 농성은 초기에는 환경운동연합과 충북사회발전연구소가 주도했으나 그 뒤 괴산 지역 사람들이 투쟁의 주체로 서게 되면서 운동의 대중성과 지속성이 확보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문장대 등산대회 등 전국적으로 조명 받는 행사들은 물론‘국립공원을 생각하는 모임’이나 등산모임 등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킨 것도 충북사회발전연구소의 활동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문장대 용화 온천 개발 저지 투쟁과 무심천 하상 구조물 저지 투쟁은 충북사회발전 연구소가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언론에서는 거의 조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는 중산층 눈높이의 시민운동만을 조명하는 언론인의 편파적인 관점도 문제가 있겠지만 다른 단체의 활동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알리는 환경운동연합의 노력이 부족에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충북 지역 시민 운동을 돌아보며’에 대해
시민운동과 관련된 발제에 대해서는 무심천 하상 구조물 증설 저지 대책위 활동 부문에 대해서만 언급하겠습니다. 발제자는 ‘무심천 대책위 활동은 지역에서 지방자치 단체장을 상대로 구체적인 사업추진을 반대하며 시민의 환경권과 개발에 대한 참여권 보장을 위해 싸운 실질적인 의미의 최초의 활동으로써 그 성과는 가시적으로 드러난 하상 주자창의 콘크리트 구조물 증설 저지 등 무심천의 파괴의 중단 약속보다 시정의 주요 정책 결정 시 시민사회의 의견을 수렴하여야 한다는 참여 민주주의의 핵심 과제에 접근하도록 공직 사회에 대한 경고와 시민 사회의 영향력이 강화되었다는 점이 더 높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라고 그 의의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필자는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문제는 글이 그 때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 운동은 환경운동연합이 적극 참여했지만 환경운동연합 만의 힘이 아닌 충북사회발전연구소의 헌신적 투쟁, 청주 시민회, 청주 여성 민우회, 일하는 사람들 등 다양한 영역의 시민 단체가 참여하는 운동’이라고 정리하고 있는데 당시의 투쟁은 충북사회발전연구소의 주도적이고 헌신적 투쟁, 환경운동연합과 청주시민회가 적극적 참여, 청주 여성 민우회와 일하는 사람들의 동참, 보수적인 단체인 정론회의 참여, 경실련의 참여 거부 등으로 정리해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활동에 대한 정리처럼 무심천 하상 구조물 증설 저지 투쟁도 조직체계에 대해 언급해야 된다고 봅니다. 당시 대표는 정론회, 박종호 교수였고, 실행위원장은 충북사회발전연구소 신동명 부소장이었습니다.
한편 발제자는 그 싸움 이후 시민단체에 대한 관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하는데 이는 투쟁 속에서 결과적으로 획득된 것이 아니라 충북사회발전연구소의 전략적 방침 속에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충북사회발전 연구소는 문장대 용화 온천 싸움을 통해서 도 단위의 개발 세력에 대한 사회운동단체의 견제 및 견인, 무심천 하상 구조물 증설 저지 투쟁을 통해서 청주에서의 시민환경운동 세력의 도덕적 우위 및  견제 세력으로써의 위상 확보 등을 목표로 하여 싸웠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료집을 발간할 때, 제 글을 함께 올리거나 2차 토론회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첨부화일#1 12월_10일_토론회에_대한_몇_가지_문제_제기.hwp [34.31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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